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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AURI

베를린 중앙 도축장 부지의 재개발과 시사점

by 도시관찰자 2020. 1. 21.

* 이 원고는 독일 한인 도시 연구자 모임 (KURGG)의 베를린 중앙도축장 부지 대상 연구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 원문 다운로드 주소: https://www.auri.re.kr/pdf/20190711/3.3.pdf

베를린 중앙 도축장 위치도. (Geoportal Berlin / [Digitale farbige Orthophotos 2018

베를린 중앙 도축장(Zentralvieh- und Schlachthof) 부지는 판코우(Pankow) 구(區)에 놓인 약 58헥타르의 부지로, 산업화 시대에 건설된 베를린 중앙 도축장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주요 건물 일부만 남겨진 채, 현재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으로 재개발되었다. 중앙 도축장 부지의 재개발 사업은 베를린에서 통일 이후 실패한 도시개발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어 왔다. 어떤 역사적 사건과 결정 등이 이 구역을 실패한 사례가 되도록 만들었는지 그리고 현재 모습은 어떠한지 이 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베를린 중앙 도축장의 역사

1830년 베를린은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기존의 농업 및 수공업에 종사하던 인구가 모여들던 도시로, 1870년대 인구가 90만에서 150만으로 급증하였다.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인해 주택, 가스 시설, 상하수도 시설, 병원, 교회 등의 인프라 부족해졌고, 도시의 위생 문제가 심각해졌다. 대표적 문제 중 하나가 식중독,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으로, 도축업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베를린의 슈프레(Spree)강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이 그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도축 행위도 빈번해지면서, 1866년 8000여명이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그중 5000여명이 사망하였다.(Guhr 1996, p.11)

인구 증가로 인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864년 베를린 의사이자 사회적 위생의 개척자인 루돌프 피르쇼(Rudolf Virchow)는 시립 운영 사육장 및 도축장 건설을 제안하였다. 목표는 저렴한 고기의 생산이 아닌 건강한 고기의 생산이었으며, 최종적으로는 도시민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1868년 프로이센 정부는 ‘공공 독점 사용 도축장 설립(Errichtung öffentlicher, ausschließlich zu benutzender Schlachthäuser)’ 법안을 공표하였고, 1876년 베를린시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의 39헥타르 경작지 땅에, 건축가 헤르만 블랑켄슈타인(Hermann Blankenstein)* 계획에 따라 공공 도축장 건설을 시작하였다. (Guhr 1996, p.13-15)

* 현재 중앙 도축장 부지 내에 조성된 공원 중 하나는 블랑켄슈타인 공원으로 명명되었다.

1897년 베를린 중앙 도축장에서 도축업을 하는 모습. (Schindler-Reinisch, S. (1996). Berlin Central-Viehhof. Berlin: Aufbau-Verlag.)

 

개인 도살업자들은 기존의 도축장 위생 상태가 열악함에도,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시립 운영 사육 및 도축장 건설에 반대하였다. 특히, 정육업자들은 국가 신문(National Zeitung)에 “공산주의의 냄새가 난다”고 항의 기사를 내며, 국가의 시장 개입이 불러일으키는 경제적 악영향에 대해 강조하였다. 하지만 시 정부는 중앙 도축장을 당시 최고의 설비를 갖춘 위생적인 사육장, 도축장, 검역소 그리고 화물 저장소를 갖춘 곳으로 건설했다.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 가스가 무료로 제공되었고 또한, 추가 요금 없이 정육업자, 기업가 모두 자유롭게 시설을 임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중앙 도축장은 하루에도 15,000마리 이상의 소, 돼지, 송아지, 양이 도축되는 핵심 시설로 자리 잡았다. (Adam-Tkalec, 2017)

1929년 당시 베를린 중앙 도축장의 항공 사진 (Festschrift zum 50. Jubiläum des Zentral-Vieh- und Schlachthofes, Berlin 1931)

인구 증가로 인해 공공의 위생 문제가 대두되고, 이에 국가가 개입하여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면서, 해당 부지는 베를린의 도시개발 역사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의 폭격으로 80%가량의 중앙 도축장 건물이 붕괴하였고,* 전쟁이 끝난 1945년에 이르러서야 도축업이 재개되었다. 분단 후 동베를린에 놓여있던 중앙 도축장은 동독의 정육 국영기업(Volkseigener Betrieb)을 통해 계속 운영되었다. 이후 정육업 외의 다른 산업이 도축장 부지에 점차 들어서기 시작했고, 1990년 통일 이후에는 동독의 국영기업이 민영화되면서, 중앙 도축장을 이용하던 모든 사업이 중단되었고, 결국 부지는 방치되었다. (SfS2, 2007)

* 전쟁 당시에는 러시아 붉은 군대가 중앙 도축장 부지의 철도 접근성을 이유로 페르가몬 제단을 포함한 전리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1943년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보기 전 베를린 중앙 도축장 부지(위)와 1953년 전쟁 피해를 본 베를린 중앙 도축장 부지의 상황(아래)을 보여주는 아이소메트릭 뷰.

중앙 도축장 부지의 재개발 시도와 주요 내용

한편 전문가들은 통일로 인한 베를린의 도시 성장을 예측하였고, 약 3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았다.* 구 서베를린 지역은 1980년부터 이미 주택 부족을 경험하고 있었고, 1990년 수요대비 공급 부족분은 15만에서 25만 가구로 추산되었다. 통일 이후 베를린으로 유입될 인구를 고려했을 때 2010년까지 35만에서 40만 가구의 주택 수요와 약 1300만 제곱미터의 산업 부지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이 되었다. (SfS1 2007, p. 4-5) 이에 정부는 긍정적인 수요 예측을 바탕으로 주택개발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 1990년 당시 베를린 인구 약 340만명이었고, 주요 인구 증가 예측은 아래와 같았다.(SfS1 2007, p. 4)
1990년 Statistisches Landesamt Berlin: 2010년까지 370만명
1990년 IfS Institut für Stadtforschung und Strukturpolitik: 2010년까지 360~380만명
1991년 empirica: 2005년까지 350만명
1992년 Bundesforschungsanstalt für Landeskunde und Raumordnung: 2000년까지 360만명
1992년 Prognos AG: 2010년까지 360만명
1993년 Deutsches Institut für Wirtschaftsforschung: 2000년까지 360~380만명

** 1995년 지방선거까지 80,000 채의 주택 건설을 계획하였고, 실제로는 1999년까지 71,000채의 주택이 건설되었거나 건설허가가 났다.

중앙 도축장 부지는 도심에 위치하여 시내와 접근성이 높았고, 대중교통 연결성 또한 좋았다. 이웃에 위치한 주거 구역은 당시 시민들에게 인기 있던 곳으로, 방치되어있던 중앙 도축장 부지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베를린시는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도합 약 950헥타르에 달하는 주요 거주지 5곳을 공식적인 도시개발지역(Entwicklungsbereiche)으로 선정하였고, 중앙 도축장 부지 역시 개발지역 중 한 곳으로 포함되었다.** 1994년 9월 s|es 도시개발회사가 신탁개발기구로 지정되었고, 중앙 도축장 부지의 개발 목표는 2700채의 주택과 총면적 217.000㎡의 오피스 및 상업 시설을 바탕으로 높은 밀도와 다양한 용도 혼합을 이뤄내는 것이었다. (SfS2, 2007)

* 통일 이후 베를린의 올림픽 개최 가능성을 높게 점치면서, 베를린 시는 통일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지원을 위해, 중앙 도축장 구역을 미디어 마을(Mediendorf)로 개발하기로 하였으나, 1993년 시드니가 개최지로 선정되며 올림픽 개최는 무산되었다.*** (SfS2 2007, p.3)

** 중앙 도축장부지는 1993년 7월 8일 도시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 이후 진행된 공모전에서 다름슈타트(Darmstadt)의 트로얀(Trojahn) 건축 설계사무소가 조경 설계사인 미하엘 팜(Michael Palm)과 함께 작업한 마스터 플랜이 당선되었다. 주요 개념은 선형 구조의 도축장 홀을 기준으로 중심축은 공원과 녹지로 남겨진 채로 시야를 확보하며, 주변 지역과 유사한 전형적인 도시 블록 구역으로 개발하여 높은 밀도와 주거의 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었다.

베를린 중앙 도축장 부지 내 타운하우스가 밀집한 구역의 모습

하지만 베를린시의 도시개발지역 사업은 실패였다. 1995년 베를린 건설 행정부의 연구에 따르면, 베를린 도심의 인구 증가 예측은 맞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람들은 베를린 시내가 아닌 도시 외곽으로 이주하였다.* 기존의 계획과 달리 71,000 채 중 56,000채가 교외에 지어졌고, 이는 주택 건설에 대한 주정부의 투자 실패로 판단되었다. 1997년 주 정부는 주택건설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여 사회주택을 건설하는 대신 민간 자본 투자를 통하여 자가 보유 주택의 비율을 높이는 방식(Eigentumersstrategie Berlin 2000)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였다. (Bodenschatz and Brake 2017, p. 205-207)

* 베를린 시의 인구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약 5만명 가량 감소했다.

이런 상황 변화는 도축장 부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중앙 도축장 부지는 토지 소유 문제에 관한 토지개편(Bodenneuordnung) 재판으로 인해 개발이 지연되던 상태였다. 주 정부의 주택 공급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대상지 역시 공공주도의 개발 대신 민간주도의 개발로 결정되었는데, 이러한 결정은 시장에서 선호되는 교외형 단독 주택을 도심 속에 공급하여 교외로 빠져나가는 인구를 막고자 한 것이었다. 중앙 도축장 부지뿐만 아니라, 5개의 개발구역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단독 주택 공급을 최대화하였다.

2002년 중앙 도축장 건물 대부분이 철거된 채로 본격적인 개발을 앞둔 상황의 모습(위)과 2018년 현재 개발이 거의 완료된 모습(아래)의 아이소메트릭 뷰. 2018년 도면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건물 3채는 부지 내에서 도로 및 공원 시설들을 제외한 유일한 공공시설이다. 그 외 규모가 큰 건물은 대부분 상업시설이다. © OpenStreetMap contributors

중앙 도축장 부지는 구역별로 민간업자에게 매각되었고, 이후 구역에 따라 개별적으로 개발되었다. 초기의 개발 목표나 공모전 안과 다르게 개발된 중앙 도축장 부지는 인접 지역과 명백하게 이질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공동 주택 비율이 80%를 넘는 베를린의 도심 구역에서는 보기 힘든 타운하우스 형태의 단독주택 혹은 3, 4층 규모의 공동주택 위주로 공급되었고, 부지 내에는 높은 비율의 공원과 녹지가 조성되었다.

타 지역에 비해 용적률 및 건폐율 모두가 절반 이하로 낮고, 인구밀도 역시 20%에 불과한 수준이다. 물리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사회적 특징 또한 주변과 차이를 보인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은 2.32%로 2015년 기준 베를린시의 평균인 6.6%보다 한참 낮다. 더불어, 18세 미만 거주민의 비율은 30.5%에 달한다. 실업자가 거의 없고, 유자녀 가정이 많은 중산층이 살기 좋은 구역이 된 것이다. (Myrrhe, 2010)

저층 저밀의 단독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대상지가 도심 구역임을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중앙 도축장 부지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과 시사점

19세기 인구 증가에 따른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베를린 정부는 공공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중앙 도축장을 건설하였다. 세계대전과 분단의 시기를 거치며, 과거 산업화 때처럼 인구 성장을 다루기 위해 주 정부는 하향식 개발 계획을 통해 주택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 예상은 맞지 않았고, 이는 오히려 민간주도의 개발을 부추겼다. 지역은 이제 중산층만을 위한 공간, 다양한 인종과 경제계층이 섞여 사는 베를린의 기존 도시 맥락과 특징과는 다른 이질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오늘날 실패한 대표적인 도시 개발 정책으로서 언급되는 중앙 도축장 부지는 결국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한 채 통일 이후 베를린 주 정부와 민간 업자들의 욕망에 의해 개발된 지역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거 베를린 시민 전체와 도시 위생을 위해 공공 개입하여 생겨난 중앙 도축장 부지는 현재 역설적으로 하향식 개발 계획이 실패한 채 공공적인 개발과는 멀어진, 일부 계층만을 위한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개발업자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주거와 상업 시설 위주로 개발하면서 중앙도축장 부지 내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공 및 커뮤니티 시설이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에 비어있던 부지에 회의장 및 쇼핑센터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이에 반대하며 공공 및 커뮤니티 시설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움직임은 시민들이 지역 개발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통일 이후 민영화된 도시개발을 거친 지역에서 어떻게 다시 공공의 목소리가 전개될 수 있는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1. Adam-kalec, M. (2017). Historisches Berlin: Eine Stadt voll Fleisch und Blut. Berliner Zeitung. [online] Available at: https://www.berliner-zeitung.de/berlin/historisches-berlin-eine-stadt-voll-fleisch-und-blut-28631940.
  2. Bodenschatz, H. and Brake, K. (2017). 100 Jahre Groß-Berlin/Wohnungsfrage und Stadtentwicklung. Berlin: Lukas Verlag für Kunst- und Geistesgeschichte.
  3. Guhr, D. (1996). Berlin Central-Viehhof. Berlin: Aufbau-Verlag, pp.7-71.
  4. Myrrhe, A. (2010). Ein Townhouse im Schlachthof. Tagesspiegel. [online] Available at: https://www.tagesspiegel.de/berlin/neue-reihenhaeuser-ein-townhouse-im-schlachthof/1939130.html
  5.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SfS1) (2007). Berliner Entwicklungsbereiche-eine Bilanz ; Biesdorf-Süd, Wasserstadt Berlin-Oberhavel, Johannisthal / Adlershof, Rummelsburger Bucht, Alter Schlachthof. Berlin: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6.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SfS2) (2007). Städtebaulicher Entwicklungsbereich Alter Schlachthof - Bilanz der Entwicklung. Berlin: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7. Senatsverwaltung für Bau- und Wohnungswesen(SBW) (1995). Alter Schlachthof Berlin - Umbau eines Stadtquartiers. Berlin: Senatsverwaltung für Bau- und Wohnungswe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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