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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AURI

비전 없는 도시개발, 베를린 오이로파시티 프로젝트

by 도시관찰자 2020. 1. 22.

오이로파시티는 동네 근처라 시내를 나갈 때 종종 지나쳐가는 곳이다. 공터에 전쟁에서 살아남은 건물 몇 채만 있었을 때부터, 공사를 준비하면서 필지마다 철조망이 들어서는 모습, 공사가 시작되고 중앙역 뒤편에 새로운 건축물들이 들어선 모습, 그리고 이제는 오이로파시티에 다수의 건물이 완공된 모습까지 그야말로 시작부터 꾸준히 관찰하고 있는 장소고,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곳이다. 정말 이렇게밖에 개발할 수 없는 걸까? 개인적인 건축디자인 취향으로 인한 불만족스러움부터 조성된 공간의 엉성함 그리고 사회적 문제(주거난)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게 된 정책/도시계획으로 인한 불만족까지... 그야말로 21세기 베를린 도시개발 실패의 총체적 예시다.

* 원문 다운로드 주소: https://www.auri.re.kr/pdf/20200120/3.3.pdf

오이로파시티 개발 중인 현재 지도 © OpenStreetMap contributors. 진한 실선(주황색)은 오이로파시티를 반으로 갈라놓는 하이데 거리(Heidestraße)로 지하 터널을 통해 티어가르텐을 남쪽 지역으로 연결. 연한 실선(노란색) 중 남쪽은 인발리덴 거리(Invalidenstraße) 그리고 북쪽의 거리는 펜 거리(Fennstraße)로 도시 북쪽 외곽으로 빠질 수 있는 주요 도로로 연결된다. 점선은 고속철, 지하철, 트램 등의 철도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베를린 오이로파시티(Europacity)는 베를린 중앙역 북쪽에 위치한 약 40ha 규모의 구역*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터로 남아있던 곳이다. 통일 이후 개발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 2009년 마스터플랜이 수립되었다. 2013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고, 현재는 대상지 중 하이데 거리 동쪽 지역의 건물은 대부분 완공되고, 서쪽 지역의 개발을 앞두고 있다.

*  부지의 짧은 축(동-서)의 길이는 약 340m 그리고 긴 축(남-북)의 길이는 약 1.3km

규모상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함부르크 하펜시티(128ha)와 함께 독일의 도시 개발의 최신 사례로 참고할 만한 곳이다. 이 글을 통해서는 오이로파시티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고, 그리고 개발 과정에선 어떤 문제점이 있었고 어떠한 비판을 받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오이로파시티 지역의 역사*

오이로파시티와 베를린 중앙역이 위치한 하이데 거리는 18세기 초까지 도시 밖에 있던 지역이었다. 이후 훈련장 등의 병영 시설 건설을 통해 베를린의 도시 역사에 편입되었다. 1839년 건축가 칼 프리드리히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 그리고 조경건축가인 페터 요제프 르네(Peter Jospeh Lenné)의 도시확장계획안을 바탕으로 이 지역에 훔볼트 항구와 베를린-슈판다우 운하길**이 개발된다.

* 오이로파시티-역사. (2019). Europacity: Ort mit Geschichte.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und Wohnen. [online] Available at: https://bit.ly/2KGuG7K [Accessed 21 Oct. 2019].

**  도면 1에서 남쪽의 호 형태의 슈프레강을 제외한 물길이 이에 해당한다.

19세기에는 각종 철도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현대 미술관으로 활용되는 함부르거 반호프(Hamburger Bahnhof)와 현재 중앙역이 위치한 장소에 있던 레터 반호프(Lehrter Bahnhof) 그리고 베를린 도심을 관통하는 슈타트반(Stadtbahn)을 위한 고가철로가 그 당시 건설된 대표적인 철도시설이다. 운송에 유리한 지역이 되며, 하이데 거리 인근 지역은 산업, 보급 그리고 연구시설이 들어섰다.

지역의 서쪽 모아빗(Moabit) 그리고 북쪽 베딩(Wedding)은 고밀도의 노동자 주거지역으로 개발되었고, 동쪽에는 샤리테(Charité) 병원이 그리고 슈프레강 건너 남쪽에는 제국의회(Reichstag, 현 독일 연방 국회의사당)가 들어섰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폭격을 맞으면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운하길을 따라 건설되며, 통일 전까지 버려진 땅으로 남아있었다.

개발이 거의 완료된 오이로파시티 동쪽 지역의 모습과 베를린-슈판다우 운하
개발이 거의 완료된 오이로파시티 동쪽 지역의 모습과 베를린-슈판다우 운하

오이로파시티 계획 및 개발 과정*

통일 이후 2006년 7월 하이데거리 일대를 개발하기 위한 제1차 입지 컨퍼런스(Standortkonferenz)가 열렸다. 2007년에는 3차례의 워크샵이 열렸는데, 토지 소유주인 DB AG(독일 국영철도), Vivico(부동산 회사)**, Aurelis(부동산 회사)  그리고 베를린 미테 지역구청과 베를린 도시개발청(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외에 내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계획 과정을 위한 기본 조건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2007년 말 도시개발 공모전이 열리고, 총 5개의 팀에 공모전 참가 자격이 주어졌다.

* 오이로파시티-연혁. (2019). Europacity: Chronologie.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und Wohnen. [online] Available at: https://bit.ly/2s7hVwF [Accessed 21 Oct. 2019].

**  Vivico는 독일 철도 관련 부동산 관리 회사, 이후 CA Immo로 매각되어 민영화되었음.

공모전이 진행 중이던 2008년 2월에 열린 2차 입지 컨퍼런스에서는 공모전 내용 그리고 참가자 등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었다. 이어 2008년 4월 3차 입지 컨퍼런스에서는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 공모전은 도시건설 분야와 오픈 스페이스 분야 팀이 함께 작업하여 진행되었고, 1등작은 ASTOC(도시건설)과 Studio Urban Catalyst(오픈스페이스) 팀의 안이 선정되었다. 개별 구조는 개방적이고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구역의 형태를 규정할 수 있는 차별화된 도시건설 컨셉과 다양한 건물 유형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참고로 ASTOC은 함부르크 하펜시티 국제 공모전(1999년)에서도 당선된 사무소였다. 오이로파시티 공모전 결과: https://bit.ly/2O7qikb

도시개발청은 공모전 수상작을 바탕으로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 들어갔으며, 이를 위해 교통, 인프라, 마케팅,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세부적인 조사와 토론 과정을 거쳤다.

2008년 11월 4차 입지 컨퍼런스에서는 그렇게 수립된 마스터플랜을 소개하였고, 2009년 5월 베를린 주 정부는 마스터플랜을 통과시켰다. 2010년 4월과 5월에는 오이로파시티의 인프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워크숍이 있었다. 2010년 7월에는 5차 입지 컨퍼런스가 열렸고, 시민들에게 해당 워크숍 내용과 전체 계획 및 사업 과정 상황을 소개하였다.

2011년 5월에는 마지막 6차 입지 컨퍼런스가 열렸고, 비공개 공모전이었던 하이데 거리 및 북항 오픈 스페이스(Freiräume Europacity / Heidestraße und Nordhafen) 결과*에 대한 전시 및 소개 그리고 토론이 있었다.

* 하이데 거리 및 북항 오픈 스페이스 공모전 결과: https://bit.ly/2DfpELr

이후 7월에 베를린 주 정부는 민간 투자자와 도시건축 계약(Städtebaulicher Vertrag)*을 체결한다. 계약의 주 내용은 토지 내 대부분의 건물 개발에 대해 공모전을 발주하거나, 최소한 베를린 건설위원회(Baukollegium)**가 설계안을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뒤 구역별로 개발을 위한 지구 상세계획(B-Plan)이 작성되었고, 주요 건축물과 오픈스페이스에 대한 공모전이 진행되었으며, 2013년 9월 처음 공사가 시작되었다.

* 도시건축 계약은 일반적으로 민관협력의 성격을 갖는 계약으로 독일 건설법전 11조를 근거로 하며, 기존의 도시건설법이 규제하지 못하는 도시건축적 과제를 충족시키기 위해 별도로 맺는 특별 계약.

** 건설 위원회는 6명의 독립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으며, 베를린의 총괄 건축가 격인 빌딩디렉터(Senatsbaudirektor)와 함께 베를린시의 도시적 그리고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건축 프로젝트나 도시건설 계획에 대한 자문을 하는 기구다. 베를린의 빌딩디렉터는 레굴라 뤼셔(Regula Lüscher)로 2007년부터 2차례 연임하고 있다.

*** Friedrich, J. (2019). Gestaltungsdichte Europacity Berlin. Bauwelt, [online] (12.2016). Available at: https://bit.ly/2qBOKkC [Accessed 22 Oct. 2019].

오랜 세월 빈땅으로 남겨져있었지만, 베를린 중앙역 북쪽에 위치한 도시의 중심 구역이자 얼굴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이면서도 다양성을 갖춘 미래의 구역으로 개발될 곳으로 기대되었다. 공식적인 프로젝트 명칭은 오이로파시티 - 중앙역의 지속가능한 구역(Europacity - Nachhaltiges Quartier am Hauptbahnhof)이었다.

 

오이로파시티 마스터플랜(2009년)과 구조컨셉(2009년) © ASTOC, Köln

마스터플랜, 개발 가이드라인 그리고 구조컨셉*

마스터플랜 작업은 공모전 우승자인 ASTOC와 Studio Urban Catalyst 그리고 교통 계획을 담당할 ARGUS가 추가로 참여하여 공모전 수상작을 바탕으로 계획하였으며 주요한 내용은 베를린 도시개발청, 미테 지역구청, 토지 소유주인 DB AG, Vivico, Aurelis가 함께 결정하였다.

*  오이로파시티-계획과정. (2019). Europacity: Planungsprozess.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und Wohnen. [online] Available at: https://bit.ly/344krSe [Accessed 21 Oct. 2019].

마스터플랜은 엄격한 규정이 아니라 장기적인 개발 과정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베를린시 도시개발의 정치적 목표 틀 안에서 도시건설, 오픈스페이스, 교통의 목표와 질을 정의하는 형태였다. 예를 들면 길과 광장을 따라 이어지는 붉은색 선은 지상층에 소매업과 요식업이 선호되는 구역이지만, 의무는 아니다. 마스터플랜은 용도, 오픈스페이스, 순환(모빌리티) 그리고 기존 현황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기존의 공모전 수상작의 특성을 따라 부분 구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가지도록 구분되었고, 개발 과정에서도 6개 구역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개발하였다.

추상적인 마스터플랜은 가이드라인과 구조컨셉을 통해 보완하려고 하였다. 가이드라인은 5가지 목표인 1. 베를린다운 용도 구조 개발, 2. 도시와의 연결, 3. 통합된 교통 네트워크, 4. 지속 가능하고 환경에 유익한 개발, 5. 도시구조 및 오픈스페이스의 질과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고, 구조컨셉은 마스터 플랜을 바탕으로 개발 목표를 시각화하여 검토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오이로파시티 배치도 (좌측은 2013년, 우측은 2017년 배치도) © OpenStreetMap, 좌측 도면은 도시건설컨셉(Städtebauliches Konzept)을 토대로 작성되었고, 우측 도면은 Europacity Urbanes Quartier am Hauptbahnhof 보고서 도면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오이로파시티 개발의 문제점과 시사점

오이로파시티는 계획 초기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개발이었던 만큼 최근 하나둘 완공되고 있는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움에 대한 비판이 크다. 특히 획일적인 파사드 디자인뿐만 아니라 도시성과 공공 공간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건축평론가인 니클라스 마크(Niklas Maak)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건설정책으로 현대 도시(개발)는 걸어 다닐 수 있는 창고 시설처럼 답답할 정도로 차가워 보인다”고 평가한 적이 있는데, 오이로파시티의 현재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정도다.*

* Maak, N. (2019). Architektur und Utopien - Kann Architektur zu einer besseren Gesellschaft beitragen?. [online] Deutschlandfunk Kultur. Available at: https://bit.ly/2OaNZZ7[Accessed 5 Nov. 2019].

실제로 오이로파시티의 개발은 최근 개발된 수많은 독일의 유사한 신규 주택 단지 개발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의 오이로파 구역(Europaviertel), 슈투트가르트의 오이로파 구역(Europaviertel) 그리고 뮌헨의 메쎄 도시 리엠(Messestadt Riem)는 단조롭고 매력 없는 투자용 건축(Investorenarchitektur)으로만 가득 찬 채 개발된 독일의 대표적인 도시개발 사례다.* 과거 공항 부지를 재개발한 뮌헨의 사례를 제외하면 프로젝트 명칭까지도 놀랍도록 획일적이다.

* Forster, S. (2019). Endstation Europacity: Zur Krise der Berliner Stadtentwicklung. Ein Essay über fehlendes Selbstbewusstsein. [online] Tagesspiegel.de. Available at: https://bit.ly/2s5j1ca[Accessed 5 Nov. 2019].

문제는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다. 오이로파시티에는 약 3,000채의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중 사회주택은 270채뿐이다. 먼저 개발이 진행되었고 건축물 개발은 거의 완료된 하이데거리 동쪽 지역에는 사회주택이 거의 없고, 상대적으로 늦게 개발을 시작한 서쪽 지역에 주로 밀집해있다.* 베를린 시 의회 안트예 카펙(Antje Kapek) 녹색당 원내대표는 ‘부자들만을 위한 죽음의 구역’이라고 표현하며, “오이로파시티는 생기도 없고, 다양하게 섞인 도시 구역도 아니다”라고 표현하였고, 도시건축 계약 체결 당시 투자자에게만 유리하게 계약되었기에 베를린시가 얻는 것은 거의 없었던 점을 비판하였다.**

* 2014년부터 베를린시는 베를리너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건축 계약을 맺은 도시개발에선 주택의 25%는 사회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고, 2018년부터는 30%로 비율을 높인 상황이다.

** Jürgens, A. and Jürgens, I. (2019). Nur 42 günstige Wohnungen in neuem Stadtteil am Hauptbahnhof. [online] Morgenpost.de. Available at: https://bit.ly/34aaa70 [Accessed 5 Nov. 2019].

빌딩디렉터 레굴라 뤼셔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획 초기 단계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계획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베를리너 모델 계약을 구역 전체에 적용하고, 사회주택을 더 많이 짓고, 저층부는 공공 용도로 지정하고, 더 엄격한 모빌리티 컨셉을 도입할 것이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는 단순히 처음 계획을 잘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자, 현실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 Bünger, R. (2019). „Es ist ein wirklich schönes Quartier“. [online] Tagesspiegel.de. Available at: https://bit.ly/2QDI5B7 [Accessed 5 Nov. 2019].

처음 입지 컨퍼런스를 한 2006년,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2009년, 공사를 시작한 2013년 그리고 현재까지 베를린은 빠르게 변해왔고, 도시와 건축에 대한 시선 또한 마찬가지이다. 통일 이후 도시가 예상대로 성장하지 않던 2000년대 초중반 베를린에서는 민간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건축 계약이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계약된 것도 불과 10여 년 전의 전혀 다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 Bernau, N. and Keller, G. (2019). „Zeitverzug ist ein Geschenk“. [online] Berliner Zeitung. Available at: https://bit.ly/346X5LH [Accessed 5 Nov. 2019].

하지만 오이로파시티의 개발은 그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엄격하지 않은 마스터플랜 등을 통해 대비하였다. 실제로 개발 초기 사회주택 공급이 42채였지만, 단계별 개발 덕택에 하이데거리 동쪽 지역에 사회주택을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건물의 용도도 그리고 사회 구성원도 가이드라인과 달리 베를린답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공모전 결과 그리고 마스터플랜과 구조컨셉에서 볼 수 있었던 건축적 다양성은 실종되었다. 개발안이 확정되고 개발이 진행될 수록 베를린의 새로운 첫인상이 될 오이로파시티는 도시적 그리고 건축적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목표했던 비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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