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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오마이뉴스_베를린 소개서

04 가난하지만 섹시한 베를린 이용법/ Berlin Village Market, RAW Gelände

by 도시관찰자 2019. 4. 5.

* 기사 전 서문은 기고 당시 개인적인 생각이나, 기사에 대한 반응에 대해 적어놓았던 글입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 배치에 언론들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점은 없다.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 검색 의존도가 굉장히 높고, 다수의 사람들이 뉴스를 포털 사이트 혹은 페북, 트위터 등의 SNS을 통해 얻고 있는 시대에, 그런 채널을 통한 뉴스 의존도가 높다는 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하면서, 네이버로 오마이뉴스의 기사가 넘어가느냐 안 넘어가느냐에 따라 조회수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남을 느낀다. 기사가 좋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비슷한 수준의 글이어도 네이버로 넘어가면 적게는 3,4배 많게는 10배의 조회수가 차이가 난다.

개인적으로 이번 글은 조금씩 모아 온 정보와 생각을 잘 투영한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네이버에 기사가 배치되지 않음으로써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으로 2,500명 정도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래도 오마이뉴스 최상단에 배치된 기사이기 때문에 오마이 뉴스로 직접 들어온 사람은 대부분 클릭했을 것이라는 소리고, 그 말은 목요일에 오마이 뉴스에 들어와 실질적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은 적게는 3,000여 명 많게는 6,000명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마이 뉴스에 글을 기고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기준에서는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기사 기고의 편리성과 또 기사가 채택받으면서 받게 되는 돈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파급력이었다.

근데 편집부의 판단에 네이버로 보낼만한 글을 쓰지 않는 이상 파급력은 엄청나지 않다. 그만큼 내 글의 현실적 가치가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써온 글들의 배치 수준과 조회수를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극명하게 네이버 뉴스에 의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사람들은 뉴스가 나오는 매체에 직접 들어가서 보기보다는 유통업에서 수수료 다 떼어먹는 중간상인 격인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의 포털을 통해서 뉴스를 본다. 그러니 마음만 먹는다면 중간 상인 마음대로 조작도 하고, 원하는 이슈를 이끌어내는 것도 너무 쉽다. 일상의 모든 면에서 편리함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정보의 시대지만, 우리는 정보마저 누군가의 손놀림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튼 관광에 대해 그런 글을 두 번이나 써놓고 <베를린 소개서>라는 여행 관련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두 여행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도시의 좋은 장소와 도시를 여행하는 좋은 마음가짐을 계속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유럽여행 올 때 형형색색의 등산복 입지 마라 입지 말라 따위의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의역해놓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베를린에 대한 관점을 보여줄 만한 좋은 예이기도 하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베를린 이용법

[베를린 소개서 04]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베를린 '엘아베 템펠'

사진 1. 바르샤우어 거리의 시작지점 좌측은 바르샤우어 거리 우반(U1) 역이다. 멀리 보이는 탑은 오버바움 다리(Oberbaumbrucke)이고, 사진상 다리 우측 편에는 베를린 장벽 구간 중 하나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가 위치하고 있는 관광의 중심지 중 한 곳이다. 템펠을 가기 위해서 사진 반대방향으로 걸어가야한다.

우반(U1)과 에스반(S5, 7, 75)이 교차하는 베를린 바르샤우어 거리(Warschauer straße)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종착지다. 젊은이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다국적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언제나 캐리어를 끌고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객들로 넘치는 동네이기도 하다. 바르샤우어 거리에 도착해 북쪽을 향하여 걸어간다. 수많은 철로 위의 쓰레기들과 어두운 기차역 주변 이미지는 자칫 이곳을 위험한 동네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좋지 않은 인상도 잠시, 바르샤우어 거리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을 보면 그 기억도 모두 잊게 된다. 분명히 매력적인 거리지만, 이 지역이 많은 젊은이들의 종착역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철도 차량 기지

사진 2.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 템펠은 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장소이다.

처음 바르샤우어 거리를 따라 걷기 시작하면 흑백사진 자판기들이 있는 철조망 아래로 휑한 장소가 얼핏 보인다. 바로 엘아베 템펠(RAW-tempel, 아래 템펠)이라는 문화공간이 있는 곳이다. 엘아베(RAW)는 'Reichsbahnausbesserungswerk'의 줄임말로 동독 철도 차량 기지를 의미한다. 현재 템펠이 있던 장소와 건물들의 과거 용도를 상징한다.

마약을 파는 딜러들이 즐비한 입구들은 이곳이 정말 인기 있는 장소인가 하는 의심을 사게 한다. 하지만 왠지 으스스한 담장 밖에서 템펠 구역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버려진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안팎으로 공연장, 예술 갤러리, 각종 작업실, 클럽, 스포츠 홀, 음식점, 카페, 장터, 클럽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로 꽉 차 있다.

이곳을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며 안심하게 된다. 특히 중고 장터와 베를린 마을 장터(Berlin Village Market)가 열리는 일요일에는 사람들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장소가 된다. 

 

사진 3.  템펠 내, 베를린 마을 장터

구역 가장 안쪽에 위치한 베를린 마을 장터는 올해 8월 개장한 전 세계 길거리 음식 전문 장터로, 옛 산업용 건물들을 활용한 공간에서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전에 소개했던 '크로이츠베르크 마르크트 할레 9'의 '스트리트푸드 서즈데이(Streetfood Thursday)'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낡고 거친 느낌의 건물 덕택에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낸다. 일상적으로 여러 음악 행사가 있고, 때에 따라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가 있기에 단순히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는 볼 수 없다. 

 

사진 4. 과거 벙커 건물이었던 구조물을 암벽 등반용 구조물로 활용하고 있다.

템펠과 베를린 마을 시장처럼 현재 베를린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들을 비교해 보면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동·서독의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가로막던 주변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장벽으로 인해 버림받았던 지역들은 통일 전후로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건물들이 많았다.

이 장소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노동력 확충을 위해 초대된 외국인 노동자부터 학생과 예술가까지 섞여 있다. 이들이 모인 목적도 군대 면제·대안적인 삶 혹은 저렴한 월세 등 상이하다. 이들은 비어있는 집을 무단으로 점거하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의 건물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1970년 당시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던 스쾃(건물 무단 점거 운동)도 이 지역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당시 무단으로 건물을 점거한 많은 사람들은 현재 정식 계약을 해 지내고 있다. 물론 그중 몇몇은 끝까지 저항을 하다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베를린

2001년부터 올해 말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베를린 시장직을 맡아온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시장이 한, 베를린에 관한 가장 유명한 문장이 있다. 바로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언급된 2003년 당시 베를린은 그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버림받은 상태였다.

동시에 이제 막 터전을 잡기 시작한 다양한 사람들이 삶을 일궈나가고 그 안에서 다양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의 젊은이만이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에게 가장 인기 있고 섹시한 도시로 발돋움했다. 빈곤, 이주민 문제, 대안 운동에 대한 수용 어느 것 하나 보통의 도시가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베를린은 '다름의 불편함'을 포용할 수 있었기에 이에 대한 수용이 가능했다. 

 

사진 5. 암벽 등반 중인 모습.

올해 15년을 맞이한 템펠도 역시나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 공간 중 하나다. 특히 템펠은 '아래로부터의 도시 개발(Die Stadtentwicklung von unten)'이라는 좌우명 아래 건설됐다. 버려진 도시 공간을 활용해 도시를 발전시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그 시작이었다. 장벽 주변에 버려진 산업지대는 폐허나 다름이 없던 장소였다. 이 버려진 산업 지대를 이용해 '도시 안의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단순히 정부가 이 공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만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도시와 이 지역에 필요한 공간을 스스로 만들었다. 아래로부터의 도시 개발을 적극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사진 6. 템펠 구역 내부의 모습

템펠은 임시사용(Zwischennutzung)이라는 계약을 바탕으로 지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임시사용계약을 바탕으로 단기계약을 맺어가며 버려진 사유지 혹은 공유지를 다양하게 활용한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점차 늘고 있다.

특히 베를린 시의 매매대상 부동산을 관리하는 '베를린 부동산 펀드회사'에는 아예 임시사용목적의 부동산을 따로 분류해 놓았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오히려 놀리는 땅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도시에서는 (보통 문화재 보호법 아래에 있는) 임시사용 프로젝트를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 기존 건물과 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은 채 창조적인 방식으로 활용되고, 동시에 수익 창출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재자가 되어 주민의 공간을 보호한 지역 의회

템펠의 임시사용 계약에 있어서는 베를린 프리드리히샤인 지역 의회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시 템펠 땅을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 회사(Vivico Real Estate GmbH)와 템펠 설립 그룹 간의 중재자를 자임하며, 지난 15년간 템펠이 유지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이 지역의 더 나은 개발을 위해 주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치솟는 베를린의 집값을 이유로 템펠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두 곳의 투자 회사가 주택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법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15년간 사용된 이 장소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마치 오랜 세월 포장마차를 해와도 땅 주인이 나타나면 떠나야 하는 것처럼, 임시사용부지는 안전한 보호처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법적 공방 자체만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테다. 혹여나 새로운 개발 계획이 수립되더라도 계획 수립과 개발이 시작될 때까지 긴 세월이 필요하다. 당분간 템펠은 주민들의 계획을 바탕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

 

사진 7. 베를린 마을 장터 건물의 모습 이 장소는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의 Neue Heima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앞으로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베를린 마을 장터 주변을 채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15주년을 맞이하며 템펠의 그동안을 평가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토론이 열리고 있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든 시간도 잦아졌다. 템펠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이었던 초기와 달리, 현재는 수많은 여행객과 외지인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은 이 장소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워크숍 등을 통해 좀 더 주민 지향적 프로그램을 더 갖추기를 바란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최근 지역 의회에서 이 지역을 좀 더 주민을 위한 여가·휴식의 장소로 개발하려는 계획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베를린의 관광이 활성화되고, 여행객들이 더 다양한 장소를 찾아나가며 주민들이 가꾸고 만들어온 도시의 공간이 관광 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베를린에서 있었던 한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베를린뿐만 아니라 각국의 도시가 관광으로 인해 봉착한 여러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 '디즈니 랜드' 되어버린 서울, 머지않았다). 분위기, 음악 그리고 여러 행사 등의 이유로 다르다고 표현했지만, 마크트할레 9에서 세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과 템펠의 베를린 마을 장터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을 만드는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은 줄어들었다. 대신 단순 소비만 하는 관광객으로 가득 차고 있다. 관광이 점점 도시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 현상을 템펠로부터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동시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려는 템펠의 미래는 어둡다고 볼 수 만도 없다. 문화라는 이름 아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템펠을 여러분도 방문해볼 수 있길 바란다.

 

* 베를린 소개서를 통해 안 그래도 여행객과 클럽 여행객으로 북적거리는 장소를 소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베를린 소개서를 통해 좀 더 좋은 도시 공간을 소개하고, 또한 그 안에 담긴 도시의 의미를 전하려는 것이 베를린 소개서의 주된 목적이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곳을 앞으로 방문하고 혹은 이미 즐겼던 다른 이들이 템펠이 다시 주민 지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바랐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 희망한다. 여전히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고, 주민들의 바람과 앞으로의 개발계획도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15주년 토론회를 바탕으로 다시금 주민 지향적인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주민과 시민이 주인이 될 수 없는 도시에서 여행객과 관광객은 그저 돈을 쓰는 소비자일 뿐이다. 하지만 주민과 시민이 주인인 장소에서 여행객과 관광객은 새로 만난 좋은 친구들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와 소위 '때 묻지 않은 장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와 '친구'의 차이를 구분한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가 그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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