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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기고] 급진적 근대 - 1960년대 베를린의 계획과 건설

by 도시관찰자 2019. 6. 5.

이 글은 재독한글문화신문 풍경 9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오프라인 신문으로만 구독할 수 있다.

* 풍경 홈페이지: http://www.punggyeong.de/

 

Radikal Modern - Planen und Bauen im Berlin der 1960er-Jahre

급진적 근대 - 1960년대 베를린의 계획과 건설

약 10개월 간의 공사를 마친 베를린 갤러리(Berlinische Galerie)가 재개장을 하며 처음 선보이고 있는 전시는 “급진적 근대”라는 제목의 전시다. 1960년 전후의 베를린의 도시개발과 건축물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소개하는 이 전시의 제목을 보며 누군가는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왜 하필 1960년대일까? 그리고 왜 급진적 근대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기도 하고, 수많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할 만큼 복잡하기도 하다. 60년대는 현 베를린의 모습에도 수많은 흔적을 남겼을 만큼 도시개발과 도시의 이미지에 큰 자취를 남긴 역사적인 시기이다. 또한, 그 시기에 만들어진 도시의 모습은 소위 오래된 역사가 축적되어온 유럽의 일반적인 도시가 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급속한 개발이 새롭게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90% 이상의 건물이 전쟁의 피해를 입은 독일 수도 베를린의 건축가들은 파괴된 도시의 새로운 미래상을 그려왔다. 전쟁은 수많은 상처를 남긴 재앙이었지만, 동시에 건축가들에게는 빈 땅에서 새로운 이상을 그릴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1948년 소련의 서 베를린 봉쇄 이후 동, 서 베를린은 각자의 이상을 그릴 수밖에 없는 정치적으로 분단된 도시가 되었다. 더 나아가 두 도시는 전후 복구를 넘어서, 서 베를린은 자유주의의 대표로 그리고 동 베를린은 사회주의의 대표로 경쟁을 하며 각자의 이념을 상징화한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1년 동, 서 베를린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단절시킨 베를린 장벽의 건설과 함께 1960년대는 두 도시가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한 시기로 자리매김하였다. 1989년의 장벽 붕괴 그리고 1년 뒤 독일의 재통일까지, 장벽을 경계로 한 두 도시의 경쟁은 계속 이어졌다.

 

이 전시에서 소개하는 60년대의 대표 건축물을 둘러보면 60년대의 도시 개발 경쟁과 그 규모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50년부터 동 베를린의 상징거리로 건설되기 시작한 칼 맑스 알리(Karl-Marx-Allee)의 마지막 공사 구간(슈트라우스베르거 광장에서 알렉산더 광장까지)이 1964년 완공되었다. 이후 1965년에는 TV타워가 건설되기 시작하여, 1969년 동 베를린의 랜드마크로 우뚝 섰다. 이에 대응하듯 서 베를린은 문화 포럼 조성의 첫 단계로 베를린의 명예시민이기도 한 건축가 한스 샤로운의 필하모니를 1963년에 완공하고, 세계적인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어의 신 국립 미술관을 1968년 완공하게 된다. 또한 브라이트샤이드 광장에 우뚝 서있는 서 베를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와 광장 반대편에 있는 오이로파 센터도 각각 1963년, 1965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개별 건축물뿐만 아니라, 거대한 도시 개발에 있어서도 60년대는 급진적인 시대였다.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1961년에는 베를린에 첫 번째 도시재생사업으로 베딩(Wedding) 지역의 전면 철거 후 재개발 사업이 승인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개발 방식은 70년대 말까지 베를린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파괴적인 도시 재개발은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저항과 정부와의 충돌 그리고 도심 재개발의 대체 거주지로 조성하던 도시 외곽의 대단위 주택단지 개발 사업이 늦춰짐에 따라 결국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며 베를린 시정부는 60,70년대 도시개발의 상징인 전면 철거 후 재개발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하게 된다. 조심스러운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기존 거주민과 기존 건물을 존중하는 방식의 도시 재생을 진행하기게 된다.

급진적 근대 전시는 당시 전쟁으로 파괴된 베를린의 과거를 뒤로 한채 새로운 미래를 그렸던 수많은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이상을 보여준다. 그중 일부는 위에 언급된 건축물처럼 실제로 건설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가 되기도 하였고, 또 어떤 건물들은 너무 급진적이거나 주변 환경과 동 떨어진 디자인으로 인해 철거되거나 재건축 혹은 철거를 앞둔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작품들은 실현되지 못한 종이 속의 꿈으로만 남겨진 작품들도 있다. 도시의 개발 역사는 그 시대의 이상과 욕망을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전시는 전쟁을 폐허가 되었던 혹은 빈 백지장처럼 보였던 파괴된 도시의 새로운 이상을 소개한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이는 베를린의 한 역사로 오롯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장 2층에서는 188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베를린의 예술(KUNST IN BERLIN 1880–1980)이라는 주제의 전시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급진적 근대 전시와 별개로 19세기를 전후로 한 베를린의 예술 사조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변화 안에 담긴 베를린의 모습을 감상하며 60년대 베를린의 예술과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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