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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AURI

주민참여형 도시개발 사업의 의의와 한계: 베를린 역사 중심지(Historische Mitte) 개발

by 도시관찰자 2019. 6. 8.

이 글은 AURI(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5년 겨울 VOL.20에 기고한 글(건축도시동향의 해외동향)이다.

* 원문 (다운로드) 주소: http://www.auri.re.kr/auriTidings/urbanSpace_view.asp?bbs_code=8&idx=1153

 

주민참여형 도시개발 사업의 의의와 한계: 베를린 역사 중심지(Historische Mitte) 개발

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비록 그 장소를 자주 찾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의 역사성이나 사회성 등에 큰 관심을 갖는다. 베를린 알렉산더 플라츠* (이하 알렉스) 역시 그러한 장소이다. 이제는 여행객들로 가득찬 알렉스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동베를린 시민들만의 상징적 장소이자 동독 정부의 자존심과 같은 장소였다.

* 플라츠(Platz)는 ‘좌석’, ‘장소’, ‘광장’ 등으로 활용되는 독일어 단어로, 알렉산더 플라츠에서의 플라츠는 광장이라는 의미로 활용된다. 베를린 시민들은 알렉스(Alex)로 줄여 부르곤 한다.

 

알렉스 일대의 기념비적 도시 개발의 흔적

알렉산더 플라츠 개발 과정

19세기 중반까지 알렉스는 군사 축제 종교 상행위 등 다양한 용도를 위해 활용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알렉스의 주요 역사적 사건은 독일혁명 (1848년)* 그리고 통일의 시발점이 되었던 동독시민들의 시위(1989년)였다. 즉 알렉스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나라를 뒤흔든 사건의 중심지였다.

* 1848년 파리 2월혁명에 영향을 받아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간 전국 규모의 동시다발적 혁명 운동이다.

알렉스가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도시의 대부분이 폭격의 피해를 본 베를린 도심에서, 알렉스 역시 그 피해를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발을 위해 피해를 본 오래된 주택을 모두 허물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시민 활동의 중심지였던 알렉스에는 시민이 중심이 아닌 동・서독의 정치적 자존심 싸움이 번져 갔다. 알렉스 일대의 도시개발사업은 알렉스부터 프랑크푸르터 토어(Frankfurter Tor)까지 이어지는 약 3.5km에 달하는 기념비적인 형태로 현재 도시의 모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근현대사의 중심지였던 알렉스가 다시 시민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베를린 역사 중심지 개발이 ‘주민참여 방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민간개발이 중심이 되어 시민의 의견은 전혀 수용되지 않은 채 알렉스 일대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렉스 개발의 기본 토대가 되는 마스터플랜은 1993년 공모전에서 베를린의 건축가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가 수상한 작품으로, 알렉스 일대에 뉴욕 스타일 150m짜리 고층 빌딩 10개를 짓고 저층부를 블록화하는 것이 중심인 계획이었다.

이 계획안은 현재의 도시 개발 트렌드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이미 알렉스 일대가 계획안과는 무관하게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점과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전혀 상반되는 디자인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계획 대상지 내의 동독 건물들이 그동안 문화재로 지정되어 신규 개발에 제약을 주는 점도 골칫거리였다.

최근 한스 콜호프는 시민참여 토론회에서 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그 역시 시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민간개발을 통제할 만한 법적 수단이 되지도 못한다.

 

알렉산더 플라츠 일대 도시 개발 계획. 이미지 출처: 베를린 주 도시개발 및 환경청 홈페이지(www.stadtentwicklung.berlin.de)
베를린 역사 중심지의 시민 참여형 개발 대상지. 이미지 출처: 베를린 주 도시개발 및 환경청 홈페이지(Stadtdebatte.berlin.de)

베를린 역사 중심지의 시민 참여형 개발–대화 과정(Dialogverfahren)

알렉스 개발과는 반대로 베를린 주정부*는 지난 2월 알렉스 남쪽 약 14헥타르에 달하는 베를린의 역사 중심지 중 일부인 시청 포럼(Rathaus Forum) 일대의 공공부지 개발을 위한 대화 과정(Dialogverfahren)을 발표하였다. 특정 개발안을 수립하기 전에 지역의 미래를 위한 (주민) 대화 과정을 계획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만 약 4만 5,000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배정하였다.

* 일반적으로 베를린 시로 알려져 있지만, 베를린은 시(Stadt)이지만 동시에 주(Staat)로 주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개발방식으로, 지난 2014년 템펠호프 공항 부지 개발을 위한 정부 계획안이 시민들의 적극적인 운동과 주민투표로 원천봉쇄** 되었던 경험에서 나온 정부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Tagesspiegel, 2015.02.16) 정부의 일방적인 개발안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를 방지하는 주민참여형 개발 방식으로의 전환인 동시에 개발안 수립 이전부터 주민참여를 유도하여 개발에 방해가 될 만한 변수를 최소화하겠다는 행보이다. ‘계획의 목적은 과정이고, 민주주의적 계획은 갈등 주장 논쟁 그리고 토론’이라는 이론을 잘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Forester 1994, p. 154)

** 템펠호프 공항 부지 개발에 대한 반발은 베를린 시가 주민이 필요로 하는 저렴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이 아니라 고급 주택 개발에 중심을 두고, 도시 내에서 녹지공간이 점점 줄어드는것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대화 과정은 ‘오래된 역사 중심지 ‐ 새로운 사랑(Alte Mitte-neue Liebe)’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 곳곳에서 홍보된다. 이 대화 과정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된다. 첫째는 상시 운영되는 온라인 토론장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종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둘째는 전문가 콜로키엄이다. 이곳에서는 시민들의 의견보다 전문가와 지역 개발 관련 주체들 간의 의견이 중심이 된다. 셋째는 시민들의 참여형 행사다. 이는 답사, 워크숍, 토론회, 전시회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대화 과정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SSU)

1단계

첫 번째 단계는 온전히 온라인 대화 내용만을 종합하여 결정되었다. 1단계 과정을 통해 총 728개의 글과 2,018개의 댓글 그리고 1만 8,187개의 평가가 취합되었으며, 종합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대상지의 기능과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
② 대상지 내 의미 있는 공공기관 조직 및 사용자 그룹과의 연결
③ 대상지 역사를 재조명하고 미래의 계획에 고려 대상으로 설정
④ 교통 계획 및 교통 흐름에 대한 재평가
⑤ 주변 구역과의 네트워킹 구축
⑥ 주요 건물 일대 공공용지의 활용성과 디자인 수준을 높이기

2단계

이 주제를 바탕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은 9월까지 총 15개의 강령을 세우고, 이를 중간평가 시기에 참여한 시민들을 통해 평가하였다. 다음 나열된 15개의 강령 가운데 검은색 글씨로 표현된 부분은 앞으로 구체화할 내용이며, 금색 글씨는 이미 시 의회가 고려하고 있고 추가적인 작업이 불필요한 내용이다. 회색으로 표현된 내용들은 시민들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구체화에 포함되지 않은 주제이다.

① 모두를 위한 공간 : 다양한 사용자와 그에 상응하는 프로그램 만들기
② 경험할 수 있는 역사 :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역사 프로그램 만들기
③ 민주주의와 정치적 논의를 위한 장소 : 시민사회의 정치적 토론을 위한 장을 만들기
④ 다양한 문화를 위한 공간 : 창조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중심지로 만들기
⑤ 상업공간이 아닌 공공공간의 역사 도심
⑥ 현재 녹지공간을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기
⑦ 교통 콘셉트/ 교통 소음 줄이기
⑧ 슈프레 강* 경험하기 / 도시 내의 수변공간
⑨ 밀도 높은 개발 : 주거, 상업, 숙식업 등의 혼합된 고밀도 개발
⑩ 개발 없이 기존의 공공공간 유지하기
⑪ 일부만 개발하기 : 주변 지역에 섞일 수 있는 부분적인 개발
⑫ 공공공간 곳곳에 역사적 요소를 배치 : 건축물 개발 없이
⑬ 역사 도심 복원
⑭ 마리엔 교회 주변 개발
⑮ 시각 축 유지 및 개발 : 주요 건축물 간의 시각 축을 고려한 개발

* 베를린 시를 가로지르는 강이다.

3단계

이렇게 마무리된 2단계를 바탕으로 최종 3단계 과정이 진행되었다. 최종적인 전문가 콜로키엄, 주민 워크숍 그리고 약 1개월간의 온라인 대화를 통해 모두 2개의 그룹을 만들었다. 첫 번째 그룹은 시청 포럼 구역을 비상업화 구역으로 개발하지만, 동시에 건축적인 변경을 반대하는 의견을 낸 시민들이다. 두 번째 그룹은 과거 밀도 높았던 도심을 복원하자는 사실상 정반대의 의견을 낸 시민들이다. 베를린 시와 용역업체인 제브라로그(Zebralog)는 현재 이 두 그룹의 의견을 종합하여 올해 말까지 베를린 시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Tagesspiegel, 2015.02.16)

 

비판

시청 포럼의 미래를 놓고 진행된 이 대화 과정은 결국 최종적으로 ‘건물을 짓느냐, 아니면 건물을 짓지 않느냐’라는 단편적인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결국 약 반년 동안 적지 않은 공공예산이 투자된 대화 과정이 앞으로 진행될 개발사업에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화 과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양하면서도 특정한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통일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냐’는 주민참여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도 제기되었다. 게다가 제브라 로그가 작업하게 될 두 그룹의 의견이 어떻게 하나로 종합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인 상황이다. 또 어떤 사람들이 이 과정에 참여하였는지 알 수 없고, 그로 인해 대화 과정 자체가 대표성이 결여된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예’ 그리고 ‘아니오’를 통한 단순 결정이 아닌 온라인 대화와 오프라인의 여러 행사를 바탕으로 한 토론 과정에는 의미가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Tagesspiegel, 2015.07.17)

 

맺는 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민참여형 도시개발의 가장 큰 한계는 모든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온라인 참여는 조금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그 역시 접근성의 한계는 명확하고, 그 대표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무작정 진행되었던 하향식(Top-down) 도시개발 계획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상향식(Bottom-up) 개발 과정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알렉스와 시청 포럼의 개발 방식을 비교했을 때, 같은 시대의 같은 도시에서도 이해관계자에 따라 주민참여가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그동안 정부의 도시 개발안에 대항하는 수많은 지역 사회운동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특히 2013년에는 주요 도시 (인프라) 개발*에 있어 사전 공공참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법제화하였고,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이 법안을적용하고 있다.

* 슈투트가르트 21 사업이 대표적인 예로, 정상적인 주민 의견수렴 절차 없이 공원과 나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견에 반하는 공사를 강행하였다. 이는 다음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58년간 집권해 온 기독민주당(CDU)이 녹색당(Die Grüne)에 정권을넘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독일 여러 도시에서 여전히 이러한 주민참여 프로그램은 명목상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 이유는 수많은 의견을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수많은 개인의 의견 속에서 전문가의 입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 개발을 둘러싼 이익단체 간의 이해관계 등 때문이다.

사회와 기술의 발전으로 도시건축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앞에 서 있다. 세계 곳곳에서 도시건축 전문가들은 디자인만 잘하는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여야 한다. 이는 하나의 통일된 의견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섞일 수 있는 다원적 사회에서 살아갈 도시건축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신이 아니라 인간인 도시건축 전문가가 다양한 의견과 정보 교류를 통해 더 나은 계획을 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John Forester, "Bridging Interests And Community: Advocacy Planning And The Challenges Of Deliberative Democracy", Journal of the American Planning Association , 60, 1994, p154.

Senatsverwaltung für Stadtentwicklung und Umwelt Berlin, Auswertungsbericht Online-Dialog 18. April – 18. Mai 2015, Berlin, Zebralog, 2015.


신문기사
http://www.tagesspiegel.de/berlin/dialogverfahren-zurhistorischen-mitte-buerger-duerfen-wuensche-aeussern/11381662.html
https://www.bz-berlin.de/berlin/mitte/hochhaus-plaene-neue-dynamik-am-alexanderplatz
http://www.tagesspiegel.de/berlin/dialog-ueber-historischemitte-in-berlin-kein-kommerz-und-ein-amphitheater-vor-demroten-rathaus/12487292.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0080


참고 사이트
http://stadtdebatte.berlin.de/
http://www.berlin.de/sehenswuerdigkeiten/3560109-3558930-alexanderplatz.html
http://dipbt.bundestag.de/extrakt/ba/WP17/438/4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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