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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AURI

베를린 도시 블록의 소셜 믹스–티어가르텐 블록 사례를 중심으로

by 도시관찰자 2019. 6. 10.

이 글은 AURI(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7년 가을 VOL.27에 기고한 글(건축도시동향의 해외동향)의 원본 글이다. 이 블록에 관련해서는 다음에 블로그에 쓰게 될 글에서 담지 못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 원문 (다운로드) 주소: http://www.auri.re.kr/auriTidings/urbanSpace_view.asp?idx=1586&page=1&bbs_code=8&key=0&word=&etc=&opendate=

** 이 글에 사용된 아이소메트리 도면은 현재 알리 사드(Ali Saad)의 책임하에 진행 중인 베를린 공과대학교 통합 건축 연구소(Laboratory for Intergrative Architecture)의 베를린 블록(Berlin Block) 연구 작업의 일부임을 밝힌다.

 

21세기는 도시의 시대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도시화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가 가지는 의미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도시 내에서의 문제도 커지고 있다. 유엔 해비타트는 2010년 <도시의 분열을 연결하다(Bridging urban divide)>라는 제목으로, 개발도상국의 슬럼 등으로 인한 도시 분열의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하였다.

현재 유럽 주요 도시 개발에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소셜 믹스이다. 소셜 믹스가 강조되고 있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앞서 언급한 개발도상국의 슬럼과 유사한 맥락에서 파리의 방리유(banlieue)와 같은 유럽형 슬럼,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의 폐쇄성, 그리고 최근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도시 양극화 현상이 도시 내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 믹스는 그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자 동시에 유럽 도시가 지향해야 하는 성공적인 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Harlander 2016)

이 글을 통해 소셜 믹스가 대두되고 있는 현 유럽에서 수많은 도시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베를린의 소셜 믹스, ‘베를리너 믹스(Berliner Mischung)’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 구역에 위치한 도시 블록(이하 티어가르텐 블록) 사례를 바탕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베를린 블록의 형성

유럽 주요 도시들은 산업화 시기를 전후로 하여 도시개발 및 확장을 통해 현재의 도시 구조의 틀을 갖추었다. 베를린 역시 도시계획가이자 엔지니어인 제임스 호브레히트(James Hobrecht)가 1862년 수립한 호브레히트 계획(Hobrechtplan)을 바탕으로 진행된 도시 확장 및 주택 건설사업을 통해 이전까지 정해진 틀없이 확장되고 있던 도시 블록을 정돈하며, 현재 베를린의 도시 블록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호브레히트의 계획은 산업화 등으로 도시 이주민이 증가하였던 시기에 이로 인해 발생한 주택난과 무분별한 도시 확장으로 생긴 위생 문제와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부 건축규제가 미비하였고 이로 인해 새롭게 지어진 중정형 공동주택과 주거 블록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열악한 수준의 고밀도로 지어졌다. 평균 약 5만 제곱미터 규모에 달하는 블록형 주거 건물의 1층과 건물 내 중정에서 생산・판매・상업 등 여러 기능이 뒤섞이게 되었고, 이런 형태를 ‘베를리너 믹스’ 라고 부르게 되었다. (Saad 2016, p.70~75)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형성된 소셜 믹스: 티어가르텐 블록을 중심으로

베를린 도시 블록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거나 폭격의 피해를 입었다. 그중 도심의 주요 공간들은 전후 1957년과1987년 두 번의 베를린 국제건축전(Interbau 57, IBA 1987) 등을 거치며 유수의 건축가와 계획가의 손을 거쳐 재개발되거나 혹은 예전 모습대로 재건축되었다. 그러나 그 외에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들은 시장의 논리나 상황에 맞춰 개발되거나 혹은 버림받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지역이 통일 이후 인종・사회・경제・문화 그리 고 기능적으로 다양함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베를리너 믹스를 위한 토대가 되었다. (Saad 2016, p.70~75)

티어가르텐 블록은 베를리너 믹스가 존재하는 수많은 구역 중 하나이고, 호브레히트 계획에 일부 영향을 받은 블록이기도 하다. 블록은 동쪽의 플롯웰 거리(Flotwellstraße), 서쪽의 쾨너 거리(Körnerstraße), 남쪽의 폴 거리(Pohlstraße) 그리고 북쪽의 뤼초우 거리(Lützowstraße)에 둘러싸여 있으며, 규모는 호브레히트 계획의 평균 블록 규모와 유사한 약 5만 4,000제곱미터이다. 티어가르덴 블록은 베를린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많이 경험한 공간임에도 비교적 최근까지 주목을 받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베를린의 수많은 주거 블록들에서 어떻게 소셜 믹스가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파괴 : 제2차 세계대전 중(1939~1945년)

베를린을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로 만들겠다는 히틀러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 계획의 일부는 밀도 높은 주거 건물로 구성되어 있던 티어가르텐 블록에 영향을 미쳤다. 남북을 연결하는 중심축상에 위치해 있던 건물을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의 실현을 위해 철거한 것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폭격으로 인해 블록의 나머지 건물도 다수 파괴되거나 피해를 입게 된다. (Reichhardt, 1998)

재건 : 제2차 세계대전 이후~통일 전(1945~1989년)

전쟁이 끝난 이후 도시 곳곳에서 재건 사업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이 블록은 큰 변화가 없이 파괴된 구조 그대로 오랫동안 남겨져 있었다. 블록 동쪽에 인접한 구역이 물자와 우편 등을 수송하던 철도 기지와 철로로 단절된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서베를린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이 블록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버려진 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Gruen-berlin.de, 2016)

1960년대에 들어서 서쪽 쾨너 거리를 따라 주거용 건물과 오피스 건물이 들어섰고, 동쪽의 넓은 공터에는 물류 수송 철도기지가 있었던 지역의 특성상 대형 창고 건물과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새롭게 수립된 도시개발계획(1965)에서 도심을 관통하는 주요 고속도로가 이 블록을 지나가도록 제안되었으나, 그 개발계획이 시민들의 도심 재개발 반대 등으로 무산되면서 티어가르텐 블록은 큰 변화 없이 남겨지게 되었다.

변화 : 통일 이후~현재(1989년~현재)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독일이 통일된 이후 통일 수도가 된 베를린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버림받은 채로 거대한 창고 건물과 오피스가 들어서던 티어가르텐 블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9년 수립된 베를린 도심 계획(Planwerkstatt Innenstadt)에서 물류 수송 철도기지 일대를 공원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과거 철로변이었기에 버려졌던 공간은 이제 공원에 인접한 베를린 최고의 장소 중 하나로 탈바꿈하게 된다. (Schwenk 2002, p.272~355)

또한 2010년에 새롭게 개정된 베를린 도심 계획에서는 공원 지역의 일부를 주거 용도로 변경시킬 정도로 이 땅의 가치가 급변하며, 고급 주택들이 들어게 된다.

 

티어가르텐 블록과 현대 베를린의 소셜 믹스

현재 티어가르텐 블록은19세기에 만들어진 중정형 주택부터 전후 지어진 판상형 주택, 공터에 큰 규모로 들어선 창고 건물과 고층 오피스 건물,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공원에 인접한 21세기형 고급 공동주택까지 하나의 베를린 블록이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건축 유형과 용도를 담아내고 있고, 이를 통해 블록의 사회적 다양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다양성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이 아니라상황에 맞춰 소규모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한두 명의 건축가나 계획가 등의 비전에 의해 이루어진 개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주정부는 지난 2016년 수립한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의 연정 계약서에서 ‘베를리너 믹스는 저력 있는 베를린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토대’라고 표현하며, 신규 개발에 있어서도 사회 및 기능적 믹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축주가 참여하는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다양한 건축주에 대한 언급은 티어가르텐 블록 사례가 보여주듯이 획일화되고 동시에 양극화된 현대 도시 개발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소셜 믹스가 단순히 공간 사용자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공간을 공급하고 소유한 사람들의 다양성도 고민해야 하는 사항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티어가르텐 블록의 최근 변천 과정을 보면 베를리너 믹스 혹은 베를린의 소셜 믹스가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시기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가던 블록에는 다양한 유형과 용도의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불과 5년 사이에 이 블록의 주거 면적이 2배로 증가하는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었는데, 이 면적의 대부분이 베를린 평균 월세 수준을 한참 웃도는 고급주택으로 인한 증가분이었기 때문이다. (Hasselmann, 2014)

베를린 정부는 이런 급작스러운 블록 사회환경의 변화를 막기 위해 지역 보호법(Milieuschutz) 등으로 39개 구역에 대한 건축 변경과 용도 변경에 있어 심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추가적으로 15개 구역에 대한 지역 보호를 검토 중에 있다. (IHK Berlin, 2017) 하지만 소셜 믹스가 강조되던 이유가 존재하던 소셜 믹스의 감소에 대한 대응이었던 것처럼, 지역 보호법 등 베를리너 믹스를 유지하려는 정책과 제도의 등장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현재 베를린이 직면한 상황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소셜 믹스를 유지하거나 단기간에 걸쳐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 문헌

발간물

  • Saad, A.(2016), “Neue Berliner Mischung?”, Bauwelt, v35, pp.70-75.

  • Senat von Berlin(1993), “Leitsätze zur Stadterneuerung in Berlin”, Berlin.

  • Schwenk, H., Mende, H. and Wernicke, K.(2002), Lexikon der Berliner Stadtentwicklung, Berlin: Haude & Spener. pp.272-355.

  • Reichhardt, Hans J., Schäche W.(1998), Von Berlin nach Germania, Berlin: Transit.

사이트

  • Grün Berlin(2016), “Über den Park”, https://gruen-berlin.de/gleisdreieck/ueber-den-park/ https://gruen-berlin.de/park-am-gleisdreieck/ueber-den-park

  • IHK Berlin(2017), “Soziale Erhaltungsgebiete (Milieuschutz)”, https://www.ihk-berlin.de/produktmarken/branchen/bauwirt/news/Karte_der_Milieuschutzgebiete/2271754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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