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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AURI

베를린의 협소주택 실험과 의의

by 도시관찰자 2019. 6. 11.

이 글은 AURI(건축도시공간연구소) 2018년 봄 VOL.29에 기고한 글(건축도시동향의 해외동향)의 글이다.

* 원문 (다운로드) 주소: http://www.auri.re.kr/auriTidings/urbanSpace_view.asp?idx=1740&page=1&bbs_code=8&key=0&word=&etc=&opendate=

2016년을 전후로 베를린에서는 협소주택(Tiny House)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바우하우스 캠퍼스 베를린(Bauhaus Campus Berlin)의 협소주택 프로젝트와 그 외에 개별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협소주택 프로젝트는 실제 베를린 몇몇 장소에서 실험적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그리고 북미의 도시에서는 플랫 혹은 주거 공동체(Wohngemeinschaft) 등의 셰어하우스가 주거 공용공간의 공유를 통한 비용 절감으로, 오랜 세월 동안 ‘대안적 주거 방식’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소 규모의 완전한 개인 주거공간을 실현시키려는 건축적 실험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측면에서는 같은 규모의 부지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내기 위한 옵션으로 협소주택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커지고 있다.

협소주택 등의 대안적 주거는 지난 수십 년간 폭등한 부동산 가격과 주택 가격으로 인해 세계 대부분의 도시에서 주요 이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독일에서는 주거난과 맞물려 컨테이너 하우스나 캠핑카 등에 거주하는 대안적 주거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독일의 협소 주택과 관련 법적 기준 그리고 최근 베를린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소 주택 프로젝트의 의의와 한계점을 짚어본다.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부지에 자리 잡은 바우하우스 캠퍼스 베를린 협소주택 프로젝트의 모습 기본소득카페와 함께 여러 채의 협소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독일의 협소주택

협소주택은 단순히 작은 주거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에 위치한 협소 주택은 기존의 각종 건축법과 규정을 피할 수 있는 결과물에 가깝고 동시에 노동력・행정절차・비용 등을 최소화하여 단위 면적당 최저의 주거 비용을 찾은 결과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인해 최근 독일에서 실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협소주택은 일반적으로 트레일러 등의 바퀴가 달린 지지대 위에 세워진 주택의 형태를 띤 채로 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1920년대부터 생겨난 이동식 간이주택(Wohnwagen)이 도시를 벗어난 대안적 혹 은 노마드적 삶의 방식을 위해 활용되었던 것과는 전 혀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트레일러 위에 세워진 주택은 고정된 부동산이 아니라 이동식 간이주택으로 건축법을 피할 수 있고, 비교적 간단한 교통법규에 의거하여 차량 정기검사협회(TÜV)의 검사 등*을 통해 허가를 받으면 된다. 그 허용 기준은 다음과 같다. (Tiny Houses Consulting UG, 2018)

  • 크기: 최대 높이 4m x 최대 너비 2.55m
  • 무게: 최대 3,500kg
  • 창문과 문에 안전유리를 설치해야 하고, 모서리는 날카로워선 안 됨**

* 협소주택을 화물로 등록을 하여 허가를 받는 방법도 있고, 협소주택의 규모나 상황에 따라 허가 관할 지역의 방법은 다양한 편이다. 그렇기에 독일 외 유럽 국가에서는 기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독일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 길이 제한이 없지만 일반 도로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7m이하의 길이가 적합하다. 다만 이동식 간이주택이 위치하게 될 장소가 주차장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주차장 면적(너비 2.3~3.5m×길이 5~6m)을 넘지 않기 위해서 5m 내외의 길이가 적합하다.

 

트레일러 위에 설치되어 있는 협소주택의 모습 3.6m의 내부 높이 덕택에 2층 공간을 침실과 작업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협소주택 프로젝트

바우하우스 캠퍼스 베를린 Bauhaus Campus Berlin)의 협소주택 프로젝트

건축가 반 보 르멘젤(Van Bo Le-Mentzel)이 2016년 설립한 협소주택대학(Tiny House University)은 2017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부지에 너비 2m, 길이 3.2m 그리고 높이 3.6m의 협소주택에서 이뤄지는 삶과 월 1,000유로인 기본소득의 삶을 실험하였다.

주택당 약 5만 유로의 총 비용이 투입되었고, 그 비용의 대부분은 가구업체의 스폰서를 통해 해결되었으나, 4,000유로 내외의 초기 비용은 입주자가 지불해야했다. 이 실험에서 입주자는 협소주택 팀의 도움을 받아 주택을 직접 제작하였다. (FAZ.NET, 2018)

르멘젤은 난민이 베를린에 몰려와 행정이 마비되던 시기에 이들의 주거 해결책으로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시작하게 되었고, 실제 프로젝트에 2명의 시리아 난민이 참여하였다.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부지뿐만 아니라 베를린 몇몇 장소에서 ‘Tiny 100’이라는 이름으로 월세 100유로를 내는 협소주택 실험이 진행되었다. (Scherff, V. 2018) 현재 협소주택대학의 프로젝트는 마무리된 상태이다. 

노숙자를 위한 협소주택

협소주택의 공론화는 예상하지 못한 도시의 공간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독일 쾰른 소재의 리틀 홈 단체(Verein Little Home)는 기부금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에 총 16채의 노숙자용 협소주택 그리고 그 외에도 독일의 여러 도시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대기자 수만 6,000명에 달한다. 너비 1.2m, 길이 3.2m 그리고 높이 1.9m의 이동식 협소주택 내부에는 매트리스, 서랍장, 구급약, 소화기, 작은 작업・요리 공간과 캠핑용 화장시설이 갖춰져 있다. (Little Home Köln, 2018)

독일의 늘어나는 노숙자 문제와 별개로, 노숙자를 위한 협소주택 공급은 그간 개인공간과 공공공간의 구분 없이 도시공간에서 살아가야 했던 노숙자들이 최소 수준 이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개인공간을 가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이 프로젝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내건축가 그레고리 클론(Gregory Kloehn)이 보여준 ‘가난과 노숙에 반대하는 예술 행위’(쓰레기통에서 모은 재료를 가지고, 인간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공간을 만드는)에서 영감을 받아 진행되었다.(Little Home Köln, 2018)

마이크로 하우징(Micro housing)

협소주택이 트레일러 위에 지어진 채로 기존의 주택 시장에서 빠져 나와 있다면,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주요 도시의 부동산 시장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마이크로 하우징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마이크로 하우징은 과거에 3, 4인 가구가 살 주택을 전면 레노베이션을 통해 작은 주방과 작은 욕실이 모두 갖춰진 12~24m2의 주택 여러 채로 분할하여 공급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신축하여 공급하는 주택이다. 일반적인 임대주택의 월세는 주변 시세의 10%이상 올릴 수 없는 등의 규제를 하는 월세제동책을 통한 제한을 받지만, 마이크로 하우징은 그런 규제를 피해 ㎡당 20~30유로의 월세를 책정하여 시장에 내놓곤 한다.*

* 기본적으로 마이크로 하우징은 작은 면적에 적합한 가구를 설치하는데, 이렇게 가구가 설치된(möbiliert) 주택은 월세제동책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이러한 마이크로 하우징은 기존 독일 사회의 적정한 1인 평균 주거 면적*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고, 면적당 월세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젊은층이 이주해 오면서 1인 가구 월세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베를린 등의 대도시에서는 작더라도 개인공간이 완전하게 갖춰진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Knuf, T. 2018)

* 주거보조금 등의 정부 지원을 받는 1인 가구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1인 주택의 규모는 최대 45㎡이고, 독일 평균 1인 가구의 임대주택 평균 면적은 2014년 기준 약 55㎡이다.

이러한 흐름은 고시원이나 쪽방 등 극단적인개인 생활공간과 공유공간이 먼저 주거 유형으로 자리 잡은 채 최근에 가구수 3, 4인 이상 규모의 주택을 개조하여 주거공간 일부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셰어하우스가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는 한국의 주거 유형의 발전 방식과는 반대 상황으로도 볼 수 있다.

협소주택의 의의와 한계점

과거 산업화 시대에 주택난은 같은 주택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적인 공간 없이 살아야 했다면, 현대의 주택난은 협소주택이나 마이크로 하우징처럼 1인 가구의 공간이 극소화되는 추세이다. 고시원 등이 단위 면적당 월세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것처럼, 월세제동책 등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협소주택은 폭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고, 마이크로 하우징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설명하는 단적인 예시다. 동시에 협소주택은 난민이나 노숙자처럼 개인의 공간이 전혀 없었던 이들에게 대안적 주거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트레일러 위에 설치되는 협소주택은 비용 등의 이유로 거주공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현행법을 피한 채 스스로 상식적인 선에서 거주공간의 안전성 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트레일러 위에 설치된 협소주택은 교통법에 따라 일정 기간마다 자리를 옮겨야 할 뿐만 아니라 주거건물로 등록되어 있지 않기에 주거구역 등에서는 설치가 불가능하고 공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 등에서만 설치 및 거주가 가능하다.

베를린에만 약 190만 채에 달하는 주택 수에 비하면 현재 예외적인 단기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수십여 채에 불과한 협소주택은 그에 관한 법률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는 건축 디자인의 실험보다는 거주공간으로서 건축법을 회피하고 있는 협소주택이 도시에서 안정적이고 적합한 1인 거주공간으로서의 기준을 갖출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문헌

  1. 리틀홈 단체 홈페이지, http://little-home.eu (검색일자: 2018.3.5.)
  2. 바우하우스 캠퍼스 베를린 홈페이지, http://bauhauscampus.org (검색일자 : 2018.3.10.)
  3. Berliner Morgenpost(2018), Verein baut Berliner Obdachlosen Mini-Dach über dem Kopf. [online] Available at: https://www.morgenpost.de/berlin/article213141035/Verein-baut-Berliner-4Obdachlosen-Mini-Dach-ueber-dem-Kopf.html (검색일자:2018.1.18.) 
  4. FAZ.NET(2018), Berliner Tinyhouse University: Auf zehn Quadratmetern ist alles möglich. [online] Available at: http://www.faz.net/aktuell/wirtschaft/wohnen/bauen/mini-haeusertinyhouse-bewegung-erobert-berlin-15173314.html (검색일자:2018.3.10.)
  5. Knuf, T.(2018), Immobilien-Trend: Warum die teuren Mikro-Appartements so boomen. [online] Berliner Zeitung. Available at: https://www.berliner-zeitung.de/wirtschaft/immobilientrend-warum-die-teuren-mikro-appartements-so-boomen-29424822 (검색일자: 2018.3.11.)
  6. Scherff, V.(2018), Wohnen im 100-Euro-Haus. [online] Utopia.de. Available at: https://utopia.de/tiny-house-le-mentzel-38725/ (검색일자: 2018.3.10.)
  7. Tiny Houses Consulting UG.(2018), Tiny Houses. [online] Available at: http://tiny-houses.de/ (검색일자: 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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