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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녹색전환연구소

[베를린에 살다 01] 세입자들의 도시, 베를린

by 도시관찰자 2019. 5. 20.

예전 베를린 사회 과학 모임에서의 발제문을 기초로, '베를린에 살다'라는 주제로 녹색전환연구소 소식지에 템펠호프 다음 연재 글을 쓰기 시작한다. 결국은 오마이뉴스에 계속 기고해온 글들처럼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의 한 주제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의 주거권을 중심 주제로 도시 역사적 맥락과 최근에 급변하는 상황 등을 다루려고 한다. 사실 베를린의 예시를 한국에 소개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런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 이 글은 베를린 사회과학모임 발제문을 바탕으로 쓰인 녹색전환연구소의 지구촌 녹색전환 소식 5호(2014년 12월) 기사를 부분 편집 후 재 게시한 것임을 밝힙니다.

녹색전환연구소 : http://www.igt.or.kr/

지구촌 녹색전환 소식 5호 기사 : http://www.igt.or.kr/index.php?mid=worldnews , http://igt.or.kr/index.php?mid=abroad&document_srl=52282

 

 

[베를린에 살다 01] 세입자들의 도시, 베를린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현재 모습

사진 1. 강제퇴거 집행예정일 아침 티나(Tina)씨 집 앞에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모습 1. 

지난 7월 15일, 베를린 도심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독일 축구 대표팀을 위한 기념행사를 기다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같은 시각 베를린 베딩(Wedding) 지역에서는 40년 동안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는 티나 씨의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해 약 150명의 사회 운동가와 이웃들이 그녀의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010년부터 집계되기 시작한 강제퇴거는 당해 독일 전역에서 약 2만 건의 강제 퇴거가 집계됐다. 강제 퇴거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증가해 2012년에는 약 2만 5000건이 발생했다. 그 해, 퇴거 명령이 있기 전 혹은 퇴거 명령이 내려졌을 때 자발적으로 집을 떠난 경우가 약 4만 건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의 공간을 잃거나 옮기게 된 경우는 6만 5000건에 달한다.

* 참조: [시민의 도시 03] 베를린의 강제퇴거 저지운동/ 세입자를 쫓아내는 이웃, 세입자를 보호하는 이웃

 

사진 2. 한자 우퍼 5번지에 사는 크리스타 카에스(Christa Kaes)씨가 최근 베를린의 세입자 문제를 다룬 세입자의 반란(Mietrebellen)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습 2. 

한자 우퍼(Hansa Ufer) 5번지에는 1975년에 지어진 한 사회주택이 있다. 이 사회주택은 특별히  노인들을 위해 지어져서 건물 내 요양 서비스, 긴급 호출 시스템과 주택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까지 있었다. 저렴한 임대료와 더불어 비슷한 상황의 노인들끼리 오랜 세월 공동체를 만들어온 곳이었다. 베를린에 있던 226개의 노인 전용 사회 주택 중 많은 수는 1992년 민간 부동산 회사에 판매됐다. 다행히도 한자 우퍼 5번지는 민간 회사에 팔리지 않았고, 거주민들은 2007년까지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베를린 시는 한자 우퍼 5번지를 아켈리우스라는 부동산 회사(Akelius)에 팔아넘겼다. 아켈리우스의 소유가 된 후 임대료가 계속 상승했고, 현재는 연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동산 회사는 임대료를 더 높이려 한다. 그 임대료를 높이는 한 가지 방법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주택으로의 보수를 선택하고 있다.

* 참조: [시민의 도시 08]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사회적 약자와 초국적 부동산 기업의 사투

 

사진 3. 월세가 2배 이상에 달하는 새 집에서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창문이 막혀버린 집은 리노베이션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고, 사람들은 그렇게 쫓겨나고 있다. 

모습 3. 

2010년 세입자 헬가 브란덴부르거(Helga Brandenburger, 65)씨의 부엌과 욕실 창문이 어느 날 벽으로 막혀버렸다. 창문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집 옆은 공터였는데,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새 건물이 들어설 수 있지만, 새 건물은 기존의 옆 건물의 창문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합벽 형태로 건물이 지어졌다. 새로 지어진 건물주는 헬가 씨의 건물주와  동일한 부동산 업체로 새 건물을 지으면서 동시에 헬가 씨네 건물의 리노베이션을 계획 중이었다. 현재 그녀는 월 520유로의 월세를 내고 있지만,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면 약 897유로를 월세로 지불해야 한다. 그녀의 연금은 905유로이다. 매달 고작 8유로의 생활비만이 남는 것이다. 리노베이션을 한다면 그녀는 이 집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말은 돈을 더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은 나가라는 뜻이었다.

* 참조: [시민의 도시 10] 창문이 사라진 집, 젠트리피케이션을 이겨낸 기념비

그래프 1. 1977년부터 2010년도까지의 독일 내 주요 대도시의 주택 월세 상승 그래프. 점선은 독일의 인플레이션을 의미.

* 그래프 출처: finanzen.net,  http://www.finanzen.net/nachricht/private-finanzen/Immobilien-Gute-Lage-schuetzt-doch-vor-Inflation-1173205

독일 전역은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가 되고 있고 인구는 줄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은 점점 젊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인구도 늘고 있다. 외국인 유입 또한 크게 늘고 있으며, 베를린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매년 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 이런 인구 구조의 변화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로 인해 베를린에서는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주거 즉, 삶에 관해서다. 먼저 이야기한 베를린의 3가지 모습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저렴한 월세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공간을 잃고 거리로 내쫓기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연금 생활을 하는 노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이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베를린의 평균 집값은 약 550%가량 상승했고, 2013년에는 독일 내에서 가장 가파르게 임대료가 상승한 도시로 기록되었다. 다른 독일의 대도시에 비해 비율 상으로 압도적으로 월세가 증가해왔고, 최근 추세 역시 앞으로 변화가 없이 상승할 것임을 보여준다. 다행히도 그렇게 상승한 베를린의 월세는 여전히 다른 독일 대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베를린의 월세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오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현상이 베를린에서 집을 사들이는 외국 자본과 전문 부동산 업체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은 베를린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른 상태이다. 그 문제점을 인식한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서는 상승하는 월세에 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민사회의 요청과 정치권의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2015년부터 특정 지역 대상으로 월세 상승 억제책(Mietpreisbremse)을 시행하기로 한 상태이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프 2.  2000년부터 2010년 까지의 베를린 시  주택 수 변화 그래프.

통일 이후 베를린은 오랜 기간 동안 특별한 도시로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베를린에서 비행기로 13시간 떨어진 한국에서 바라본 베를린은 그리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베를린을 한국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영화 베를린이 더 눈에 띈다. 게다가 유럽 여행 시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전통적 유럽 여행 목적지와 멀리 떨어진 베를린은 여행객들에게 쉽게 선택받기 어려운 도시이다. 독일의 수도임에도 베를린은 지리적 이유와 다른 여러 이유로 인해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왔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 때문이었을까 베를린은 현재 유럽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도시가 되었다. 외면받을 것 같던 도시는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민들이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정부의 지원 덕택도, 독일의 베를린 재정적 지원 덕택도 아닌 이 기회의 땅을 찾은 그리고 이 곳에서 살 수밖에 없던 그리고 살고 싶었던 사람들의 노력 덕택이었다. 지금은 수많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베를린에서 지내고, 공부하고, 즐기고, 여행하고, 직업을 찾기 위해 베를린을 찾고 있다.

베를린이 인기 있는 도시가 되며 세입자의 도시라는 기존의 명성과는 다르게 점점 임대주택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노인전용 사회주택이 부동산 회사에게 판매된 것처럼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베를린 시의 임대주택은 평균 8%씩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민간 임대주택까지 포함하여 평균 4%씩 지속적으로 감소한 상태이다. 그와 반대로 자가 소유 주택은 평균 7%씩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임대 주택의 나라이자, 세입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나라로 유명한 독일에서는 크게 걱정되는 현상이다. 인구는 늘지만, 그 인구를 수용할만한 주택,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서민들이 지불 가능한 저렴한 주택(bezahlbare Wohnungen)이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 못하는 것이 베를린의 현실이자 수많은 대도시가 직면한 문제이다. 단순 주택 공급량의 많고 적고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들이 인간 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주택과 지불 가능한 수준의 월세집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게다가 최근 공유 경제 모델로 널리 알려진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인기 있는 지역의 저렴한 임대주택들이 집을 찾는 시민들이 아닌 관광객을 위한 숙소로 변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며 그 주택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에 따르면, 같은 시기 베를린의 랭겔 동네(Wrangelkiez)에는 Airbnb숙소가 100여 곳이 존재하는 반면에, 세입자를 찾는 임대 주택은 고작 3곳밖에 없었다.

 

사진 4. 우리는 여기서 자랐다. 우리는 여기서 늙을 것이다! 라는 의미의 현수막

이런 일련의 모습과 현상들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불리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유래는 자가 교통(자동차와 그 활용을 용이케 해주는 도시의 인프라)의 발달로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도심 내에서 도심 외곽의 여유롭고 개인적인 주거공간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도시 현상이다. 이들이 떠난 주거지들은 비교적 물질적 여유가 부족한 이들이 새로 옮겨오면서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영국,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양권의 영화 속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교외에 수영장이 딸린 개인주택에서 사는 부유한 백인들의 모습이 전자이고, 도심의 관리 안되고 버려진 주택에서 각종 범죄와 함께 살아가는 흑인들이 후자인 것이다.

그다음 단계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앞서 말한 인구의 이동이 완료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도시가 황폐해지거나 아니면 오히려 빈 집과 월세가 낮아진 지역을 찾아온 예술가들과 시민들에 의해 지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이 다시 도심 지역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경제적 약자들은 그들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간 살아온 공간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쫓겨나게 되고, 재개발된 도심은 다시 부유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순환되는 현상이며,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 베를린의 도시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지도 1. 1987년부터 2007년까지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방향을 보여주는 지도

* 출처: Gentrification Blog, http://gentrificationblog.wordpress.com/2009/07/29/berlin-die-karawane-zieht-weiter-%E2%80%93-stationen-einer-aufwertung/

베를린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라는 지역구로부터 시작되어 나선형을 그리며 일어나고 있다.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가 자리 잡은 구역으로 베를린에서 일어난 수많은 각종 저항 운동과 점거 운동의 시작점이자, 지금까지도 주요 무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지역은 대부분 중심부(Mitte)와 그 주변의 지역들이고, 베를리너들에게 사랑받는 지역들(Wedding, Prenzlauer Berg, Friedrichshain, Kreuzberg)이지만, 현재는 집값이 굉장히 많이 오른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대부분 오랜 세월 분단과 장벽으로 인해 버림받았던 장소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베를린이라는 먼 도시에서 일어난 이런 현상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연관도 없을 것 같은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뉴타운과 도시 재개발 혹은 재생 사업이 원주민을 쫓아내고, 집값 상승을 부추겼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베를린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우리 사회와 전혀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연재는 그나마 세입자의 권리가 많이 보호된다고 알려진 독일에서 한국 사회와 유사한 도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고, 시민들이 그 변화에 어떻게 저항하고 어떠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대안의 부작용은 무엇인지 소개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현재 베를린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들여다보자.

 

참조

http://gentrificationblog.wordpress.com/2009/07/29/berlin-die-karawane-zieht-weiter-%E2%80%93-stationen-einer-aufwertung/

http://zwangsraeumungverhindern.blogsport.de/

http://www.hansa-ufer-5.de/

http://www.tagesspiegel.de/berlin/mieter-in-der-calvinstrasse-gegen-die-wand/6196686.html

http://alicebodnar.de/?p=2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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