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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녹색전환연구소

[베를린에 살다 04] 세입자와 정부의 타협

by 도시관찰자 2019. 5. 23.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를 바탕으로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추가하여 쓰여진 녹색전환연구소의 뉴스레터 (2015년 9월) 기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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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전환연구소 전환소식 (9월) : http://igt.or.kr/index.php?mid=abroad&document_srl=52823

 

[베를린에 살다 04] 세입자와 정부의 타협

변해가는 베를린을 지키기 위한 시위에 세입자 단체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세입자 단체가 수집한 48,531명의 서명이 베를린 시 정부에 제출되었다. 그중 40,214명의 유효 서명이 확인되었고, 이는 주민투표 역사의 신기록으로 기록되었다. 그만큼 베를린에서 주택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기록이자, 동시에 시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나타내는 기록이기도 했다.

또한, 무효표의 대부분은 독일 국적만 없을 뿐이지, 베를린에서 오랜 세월 일 해왔고, 월세를 내왔고, 세금을 내온 사람들의 표였다는 점도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세입자의 권리를 넘어서, 누가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투표권의 문제로서 또 다른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 외의  주민투표 과정 자체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정부가 주민투표 일정을 의도적으로 늦추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베를린 세입자 주민투표는 2016년 9월 시의회 투표와 동시에 치르기 위한 일정으로 계획이 되어있는데, 이는 세입자 단체의 입장에서는 지난 2014년 5월의 템펠호프 공원 개발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유럽 의회 투표와 함께 진행이 되어서 좋은 투표율을 보이며 더 많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었던 좋은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원하던 개발을 추진하지 못한 잊고 싶은 기억으로 주민투표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게다가 이번 주민투표가 시의회 투표와 함께 이루어질 경우, 현재 주택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민주당(CDU)의 의석 확보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투표 기일을 늦추거나 주민투표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의회의 세입자 단체의 법률안 검토로 법률적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세입자 단체는 이에 맞춰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하였지만, 수정안 중 일부는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였다. 주민투표 법에 따라, 내용 자체가 아예 바뀌지 않는 선에서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세입자 단체의 수정은 반려 되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시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사회주택을 사들이는 의무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주택을 사들이는 가격 기준이 없어 시장 가격 이상으로 사들이게 될 수 도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시장가격 이하’라는 보충 안을 제출했지만  반려되었다.

일련의 문제점들은 법률안이 제출된 6월 이후 차례로 불거져 나온 사실이다. 올해 6월부터 12월까지 제출된 법률안에 대한 시 의회의 검토가 진행되기 때문인데, 이 기간 동안 법률 검토와 동시에 시 의회와 세입자 단체의 공식 대화가 시작된다.

지난 8월 18일 놀랍게도 주민투표가 없어도 될만한 타협안이 발표되었다. 양측 모두 만족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타협안이었다. 지금까지(2015년 8월 26일) 발표된 베를린의 사회적 주택 공급의 새로운 방향의 타협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회주택 월세 보조금
사회주택 거주자의 칼트미테(난방비, 전기세, 관리비 등을 포함하지 않은 집세를 의미)가 세후 소득의 30%를 넘는 경우, 시 정부가 나머지 소득을 부담한다.

2. 주택 촉진펀드
신규 주택 공급, 주택 매입 및 기존 주택 수리 비용을 위한 펀드를 조성한다. 베를린 시영 주택회사는 이 펀드를 언급된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할 수 있다.

3. 기존 사회주택 운영 방식
공공 펀드를 통해 지어졌던 주택의 소유주는 사회적 의무(Sozialbindung)에 놓이게 된다. 이 사회적 의무는 민간 사회주택 소유주가 주택을 사회 주택 입주 대상자에게 임대해야만 하도록 규정한다. 베를린의 사회적 의무 기간은 기존의 2년에서 10년 더 늘어나, 총 12년 동안 사회적 계약에 묶이게 된다.

4. 경제적 약자를 위한 주택
6개의 시영 주택회사를 통해 앞으로 공급될 주택은 총 공급 주택의 55%를 주택보조금(WBS)을 신청한 사람에게 임대하고, 그 중 20%는 난민, 노숙자 등의 가난한 이들에게 공급한다.

5. 주택 지원 신용정보내역 제출 관련
시영 주택회사의 임차인은 신용정보내역(Bonitätsauskunft)으로 차별받지 않게 된다. 그동안 대부분의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요구했던 신용정보 내역은 시영 주택회사 지원자에 한해서는 임대 거부의 사유가 될 수 없게 된다.

6. 강제퇴거의 최소화
매년 약 1,000가구가 시영 주택회사의 주택에서 강제퇴거당한다. 새로운 법률안은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진 월세를 연체 혹은 미납한 세입자의 강제퇴거에 앞서 정보 수집, 상담, 중재 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한다. 시영 주택회사는 최후의 수단으로 강제퇴거를 집행할 수 있지만, 합당한 수준의 대체 주택을 찾았을 시에만 가능하다.

7. 시영 주택회사 운영방식
시영 주택회사의 신규 주택 프로그램, 주택 현대화 프로그램, 주택 수리 관련 프로그램 그리고 지역 개발 사업 등에 세입자 고문단이 참여하게 된다. 또한 고문단에서 한명의 대표자와 한명의 추가적인 참가자를 시영 주택회사의 감독위원회에 보낼 수 있다.

8. 사유화 방지
시영 주택회사의 주택 매매를 통한 사유화를 어렵게 한다. 앞으로 시영 주택회사는 공공의 법을 따르는 공공기관(AöR) 아래 놓이게 되며, 이 기관은 15명의 운영위로 구성 된다. 위원회의 다수의 표를 얻게 되면 주택 매매가 가능하지만, 이들 중 2명이 거부권(Veto)을 행사하면 주택 매매는 불가능하게 되어, 사실상 시영 주택회사의 주택 매매를 금지하는 법으로 작동될 예정이다.

 

세입자 단체의 의견이 다수 반영된 내용이지만, 세입자 단체 소속 활동가들 중 몇몇은 여전히 타협안에 의심과 걱정을 하고 있기도 하다. 월세뿐만 아니라, 점점 높아지는 부대비용과 관리비에 대한 대책이 부재하다는 점 그리고 9명으로 구성된 감독위원회에서 고작 1, 2명의 세입자 대표의 영향력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주민투표를 위해 서명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정말로 이 타협안에 동의를 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문제점이었다.

5년간 총 1조 8천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법안은 문제가 없다면, 늦어도 10월 초까지 시의회의 검토를 거치게 되고, 11월에 정식으로 발효되며, 내년 1월부터 시행되게 된다.


베를린시 사회민주당 의장 얀 슈토스(Jan Stöß)와 세입자 단체의 설립자이자 대변인인 루즈베 타헤리(Rouzbeh Taheri)가 대화를 하고 있다. ⓒDer Tagesspiegel

* 이미지 출처: http://www.tagesspiegel.de/berlin/streitgespraech-zum-mieten-volksentscheid-machen-sie-doch-einfach-ein-besseres-gesetz/11899424.html

세입자 단체는 앞으로 이 타협안을 놓고 토론을 벌여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타협안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들의 운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타협안 혹은 주민투표라는 첫 단계가 끝나면 이들은 이번 정책에서의 교훈과 자료를 바탕으로 베를린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새로운 세입자 관련 정책과 법안을 위한 새로운 단체를 조성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정치권이 하던 말과 현재 그들이 하는 말을 비교해보면, (세입자 단체의 운동은) 정치를 우리 쪽으로 이끌어 내는데 큰 걸음을 내민 것이다.” 세입자 단체의 대변인이자 설립자인 타헤리(Taheri)씨가 지난 8월 19일 수요일에 타협안에 관한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주거권, 세입자의 권리 그리고 나아가 시민들의 권리를 지켜내려는 베를린 시민들의 싸움은 단순히 몇 푼의 월세를 보조해 주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정치가 작동하는 목적과 방식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공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의 공통의 가치를 만들어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참조
Anker, J. (2015). Der Berliner Mietkompromiss. [online] DIE WELT. Abgerufen am von: http://www.welt.de/print/welt_kompakt/berlin/article145411937/Der-Berliner-Mietkompromiss.html [Zugegriffen 24 Au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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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b-online.de, (2015). Was genau steht eigentlich im Mieten-Kompromiss? | rbb Rundfunk Berlin-Brandenburg. [online] Abgerufen am von: http://www.rbb-online.de/wirtschaft/thema/2015/thema_mieten_berlin_brandenburg/beitraege/hintergrund-mieten-kompromiss.html [Zugegriffen 24 Aug. 2015].

Zawatka-Gerlach, U. (2015). Mieten-Volksentscheid in Berlin: "Kompromiss wäre gut für alle" - Berlin - Tagesspiegel. [online] Tagesspiegel.de. Abgerufen am von: http://www.tagesspiegel.de/berlin/mieten-volksentscheid-in-berlin-kompromiss-waere-gut-fuer-alle/12202416-2.html [Zugegriffen 23 Aug. 2015].

Zawatka-Gerlach, U. and Loy, T. (2015). Streitgespräch zum Mieten-Volksentscheid: „Machen Sie doch einfach ein besseres Gesetz!“ - Berlin - Tagesspiegel. [online] Tagesspiegel.de. Abgerufen am von: http://www.tagesspiegel.de/berlin/streitgespraech-zum-mieten-volksentscheid-machen-sie-doch-einfach-ein-besseres-gesetz/11899424.html [Zugegriffen 23 Aug.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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